INAZUMA ELEVEN GO

반나절째 계속되고 있다는 밤하늘 아래 발을 내디딘 신도가 처음 본 것은 무너지는 라이몬 철탑이었다. 눈 앞의 광경을 인지하기 위해 들인 시간 동안에도 그것이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그것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음을 납득할 수 있었다. 게임의 아트워크로나 볼 법한 장면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건 좀 힘겹긴 했지만, 그림자 없이 종잇장처럼 ...

마지막으로 땅을 다진 뒤 흙 묻은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고여야 할 어둠은 온데간데없는데 그 위로 내렸어야 할 희미한 달빛 또한 없어, 흙먼지와 자잘한 생채기로 덮인 제 손은 더러워진 크레용으로 대충 문질러 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밤공기와 제 몸의 색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오야마는 쭈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영...

죄송합니다......

복학 스케줄에 적응하지 못해 업보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선 <기약>부터 <불티>까지의 연재분을 전체 공개로 돌려 두었습니다. 발행분과의 비교수정을 완료하지 못해 설정 오류나 윤색되지 않은 문장 등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읽다가 수정되어도 놀라지 말아 주세요... <불티> 이후의 <극야>, <만하>...

어한갓에 회지로 나옵니다.

2021년 1월 23일(토) 온라인 개최 예정인 이나즈마일레븐 시리즈 온리전 <어한갓>에서 1부 실물 소장본을 판매합니다. 퇴고지옥을 피하기 위해 전체 분량(약 20만자)을 1, 2부로 나누어 내게 되었습니다. 2부는 아마 올해 여름방학~하반기쯤 나올 것 같습니다. 장담은 못 합니다만... 책에는 발행 분량+두 챕터가 수록됩니다. 기존 발행 분량...

쿠루마다, 츠루기, etc.

[19명 남았습니다.] “……….” 바보 같은 짓인 줄 알면서도 목소리의 잔상이 빨리 떠나가기를 바라며 침묵을 지켰지만, 바람조차 갇혀 맴도는 분지에서는 사라진 것의 흔적 또한 존재감을 더해가기만 했다. 말을 잃은 시선들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의미 없는 현상 유지를 깬 것은 쿠루마다였다. “가자.” 푹 꺼진 지형에서 탑 쪽의 평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은 참...

신도, 아카네, 아오이

어느새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던 건지, 일단 마지막 언덕을 넘고 나니 철탑까지 향하는 경로는 한눈에 들어왔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눈이 닿는 곳 모두 지금까지 거쳐 온 지형에 비해 훨씬 고르게 다져져 있다. 그래서 갈림길의 다른 쪽에 솟아 있는 것이 더 이질적으로 튀어 보였다. “웬 건물?” “폐허인가? 신전처럼 생겼네.” 뒤편...

이치노, 아오야마 / 텐마, 츠루기, 키리노, 신도

아니요. 네. 조건이 뭐죠? ……… 말이 되는 소리를. 살아남으라고요. 혼자서. 그걸 어떻게 믿죠?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 1. 새벽 공기가 이렇게 기분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발치에서 밀려드는 파도에 반사된 새벽빛마저 유난히 거슬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이치노는 머리를 짚고 불쾌감의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머리 안쪽 어딘가, 신경이...

하야미, 하마노, 니시조노, 산고쿠

"저거 신도네 아니야? 맞지?" "네?" "맞네! 신―" 하야미는 자기가 자신의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하마노도 놀랐는지 바닥에 나동그라질 뻔했는데도 화조차 내지 못했다.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눈을 마주한 하야미 또한 자기가 저지른 짓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미, 미, 미안해요!" 기껏 하마노의 입을...

츠루기, 텐마

1. 첫째, 주재자는 자신을 장기말로 쓰려는 의도다. 생판 남이라면 모를까, 이들이 나서서 서로를 해치려 들 가능성은 없다. 애초의 목적대로 전투가 벌어지게 하려면 강제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따라서 주재자는 자신을 선택했다. 죄책감 없이 검을 휘두르는 내부의 적. 극한 상황에서라도 깨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유대가 깨졌을 때의 충격, 파란. 그 뒤의 이야기는...

2016.05.07.

1. 신도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찻잔을 들어올렸다. 반대편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다. 차에서 올라온 따뜻한 기운을 흠뻑 들이쉬며 생각했다. 하늘색으로 굽이치는 머리카락에 가려 눈이 보이지 않는 상대방은 빙그레 웃으며 함께 찻잔을 들었다. 달그락대는 컵받침 소리 대신 핸드벨이 울리는 듯한 깊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 소리는 곧 오후의...

아오이, 아카네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서도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세상이다. 소리 없는, 정적인, 또렷한 모든 것들. 렌즈 너머로 비춰지는 선명한 표정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때때로 모든 빛이 한 점에 모여든 이 순간이 그대로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명멸하는 빛. 아카네는 가만히 ...

카리야, 히카루, 쿠루마다, 아마기 / 쿠라마, 미나미사와

또다. 또. 또. 또. 팔 안쪽에 무언가 쓰여 있으니 확인해 보랬더니 구석에서 표정을 다채롭게 구기고 있는 카리야를 히카루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말보다 먼저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개구리마냥 펄쩍 튀어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카리야의 말마따나 그는 ‘또’ 겪는 상황에 익숙한 편이었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왼팔이 ...